PSR 압구정본점, 무역센터점
PSR 압구정본점, 무역센터점
심리학에는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는 용어가 있다.
불행이 반복되면 그 불행에 젖어버려 적응하는 것처럼, 행복도 반복되면 더 이상 행복이 지속되지 못한다는 이론에서 나온 말이다.
아무리 좋은 향도 계속 맡다 보면 무뎌지고, 산해진미라 해도 매일같이 먹으면 질리는 것처럼 말이다.
오래도록 고대하던 물건을 샀을 때의 기쁨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잦아드는 현상,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의 감정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주장 모두 쾌락 적응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속적인 행복을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긍정심리학자들은 강렬한 일회성 경험보다 여러 번의 분리된 경험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엄청난 행운이나 거대한 자극으로 행복감을 최고조로 올려놓는 것이 아닌, 사소하지만 기분 좋은 일을 여러 번 이어 나가는 것이다.
PSR(Personal Shopper Room)은 백화점 이용객 중에서도 VVIP가 사용하는 개인 맞춤형 쇼핑 서비스 공간이다.
PSR은 그들에게 특별하기보단 일상적으로 느껴질 만큼 익숙한 백화점 안에서 새로운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했다.
신선한 경험을 불러일으키되, 격렬한 전달 방식이 아니라 은은하게 그 경험을 전해야 했다.
앞서 말했듯 강한 자극은 한순간에 큰 행복을 가져오지만 금세 권태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설계팀은 프로젝트 공간에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을 도입
미셸 푸코가 처음 제안한 이 개념은 ‘다른 공간’, ‘대안 공간’이라는 의미로, 일상과 유토피아 그 사이의 경계 지점을 표현하고자 한 설계팀의 의도와 맞아떨어졌다.
PSR은 일상 영역과 유토피아 영역으로 구성되었는데, 담백하게 디자인된 일상 영역은 편안하게 공간을 향유할 수 있게 함과 동시에
쇼핑 공간이 반드시 갖춰야 할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반면 유토피아 영역은 도전적인 구성을 통해 방문객에게 낯선 설렘과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무역센터점과 압구정본점은 공통으로 동양적인 톤앤매너를 취하고 있다.
이는 현대의 중심 가치인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녹여낸 것이다.
반면 두 지점이 위치한 각 지역에는 서로 다른 페르소나의 거주민이 있기에 공간에 차이를 뒀다.
삼성동은 능력 있는 젊은 세대들의 구매층이 두드러지는 곳이고, 압구정은 전통적인 부촌으로 4060의 구매력 있는 중장년층이 두터운 지역이다.
이러한 특성에 맞춰 무역센터점은 생기 있고 세련된 느낌에 조금 더 가깝다면, 압구정본점은 진중하면서 품격 있는 분위기를 담아내고자 했다.
일상적이지만 상투적이지 않고, 환상적이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사이 공간인 헤테로토피아에서 방문객은 새롭지만 생경하지 않고,
지속적이지만 권태롭지 않은 미묘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하는 이 공간이 그들에게 어찌 반갑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