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핸드 도산 / GRANHAND 岛山店 / GRANHAND Dosan
그랑핸드 도산 / GRANHAND 岛山店 / GRANHAND Dosan
향은 단지 후각에 머물지 않는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이 무형의 감각은 기억에 스며들고 감정을 입힌다.
어느 해 11월, 가을의 끝자락을 함께한 향수(perfume)가 훗날 코끝이 시린 계절에 대한 향수(nostalgia)로 이끄는 것처럼.
우리는 무심코 맡은 향에서 기억의 심연과 마주하는 일을 자주 경험한다. 이렇듯 우리 삶의 다양한 순간을 향으로 말하는 그랑핸드가 여섯 번째 매장을 열었다.
그랑핸드 도산은 브랜드가 전개하는 한강 이남의 첫 번째 매장으로, 도산공원과 압구정 카페 거리 사이에 위치한다.
최근 소비문화의 중심지인 이곳은 이목을 끌기 위한 공간적 시도들이 활발히 이루어지며, 상권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높은 건물과 복잡한 골목. 그간 종로, 마포, 남산에서 브랜드를 전개해온 그랑핸드에게 기존의 장소성과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 강남 매장은 큰 도전이었다.
디자인팀 스튜디오 모티프는 화려하고 강한 휘발성을 가진 지역에서 도리어 담담하고 은은하게 그랑핸드라는 브랜드를 드러내고 싶었다.
기존 그랑핸드 공간에서 풍기는 고즈넉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이어가기보다,
현대적이고 정돈된 공간 속 ‘소재’와 ‘질감’으로 풀어내, 브랜드 이미지를 확장시키길 바랐다.
향수는 어떤 원료를 택하고 어떤 방식으로 조합하는지에 따라 무수한 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점은 공간 디자인과 맞닿아 있다.
설계팀은 향수가 사람에게 다가가는 감각과 과정을 공간의 소재로 풀어내면 어떨까 생각했다.
브랜드와 맞는 소재를 선정해 담백하지만, 미묘한 변주 그리고 서로 다른 질감의 조화로 하나의 공간을 완성하는 것은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소재의 중심은 ‘목재’였다. 향수에서 노트(note)는 음악에서 음을 표현하듯, 향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나타낸다.
노트에는 나무 계열 향 원료가 많이 사용된다
나무의 다양한 수종과 질감은 향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공간에서도 그러하다. 목재는 흔한 소재이지만, 어떠한 기법으로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설계팀은 향의 원료를 배합하듯, 공간에서 목재의 다양한 질감과 표현방식 그리고 종류에 따른 감각을 연구했다.
질감에 집중한 또 다른 소재는 ‘레진’이다. 공간에 들어섰을 때, 고객이 처음 마주하는 건 3m가량의 레진 벽이다.
목재가 이 공간의 중심을 잡는 미들노트와 베이스노트라고 한다면, 레진은 첫인상으로 불리는 탑노트로 역할한다.
레진 벽은 그랑핸드의 메인 패브릭 소재를 사용하여, 몰드를 만들었다.
질감이 느껴지는 부분을 안쪽으로 배치하고 유광의 매끈한 면을 노출해, 그 질감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도록 연출했다.
레진벽을 지나면, 묵직한 매스감의 매대를 마주하게 된다.
모래가 섞인 아이보리 톤의 페인팅으로 정리한 공간을 배경으로 체리 무늬목과 카빙 작업이 들어간 메이플 원목을 조합한 매대를 배치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거친 카빙 표현 기법은 빛이 닿았을 때 자연스러운 음영을 만들고, 원목 판재의 무게감을 더해준다.
이는 일상과 사람이 맞닿아 있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소재다.
한편, 향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매장 외에도 또 다른 향에 관한 공간이 숨겨놓았다. 바로 ‘커피’다.
그랑핸드를 이용한 고객은 숨겨진 출입문을 통해 다른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테라스와 루프탑의 카페 공간은 좁은 통로를 지나 마주하게 된다.
그랑핸드만의 여유와 느긋함을 담아 계획한 이곳은 고즈넉함과 거리가 먼 도심 속에서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스튜디오 모티프는 공간 자체가 하나의 향수로 기억되길 바라며 그랑핸드 도산을 디자인했다. 목재와 레진.
언뜻 이질감이 느껴지는 두 소재의 조합은 이 공간에서 그랑핸드의 향과 접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리하여 이곳을 스친 사람들의 일상과 찰나의 순간 속 공간의 잔향(殘香)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