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벽돌 ; 소리 없이 움직이는 절기와 계절을 오롯이 현실로 느끼며 살 수 있는 집에선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질까.
집을 지어야 했던 이유는 여럿이었다. 일과 생활의 분리,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공간,
셋째 아이가 태어나며 세 자매를 이룬 아이들의 공간이 필요했다.
몇 해 동안 발품을 판 끝에 만난 대지는 여러 집이 함께 어우러진 전원주택 단지에 속해 있었다.
‘소수건축사사무소’에서 설계한 집 여러 채로 이뤄졌고, 집의 완성도가 높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같은 사무소에서 설계해 구성된 단지였기에 주변 풍경까지 하나의 작품처럼 다가왔다.
[ 유쾌함이 묻어나는 인테리어 ,오래된 우유 가게가 깜찍한 안식처가 되기까지 ]
여기에 그녀는 군더더기 없이 큰 곡선과 직선, 면으로 구성된 집을 그렸다.
집의 전면부가 오목한 곡선으로 이뤄진 건물을 멀리서 보면 마치 불시착한 우주선 같다.
“르 코르뷔지에 건축물을 가장 많이 봤어요. 단정한 외관에 다채로운 색을 사용한 점이 매력 있었죠.”
내 집을 짓는다는 마음은 더욱 과감한 선택을 하게 했다. 눈이 시릴 만큼 선명한
파랑과 노랑의 주방 가구, 오렌지색의 펜던트 조명 ‘플라워 팟’에 짙은 검은색의 상판을
지닌 다이닝 테이블이 어우러진 주방과 다이닝 공간뿐 아니라 집 안 곳곳에서 위트 있는 색채들이 눈에 띈다.
욕실의 수전과 모든 스위치, 거울과 수납장을 비롯해 작은 하드웨어까지 모두 유색이다.
“집을 지으며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제가 여러 가지 색상이 잘 어우러지도록
사용하는 걸 즐기고 있더라고요. 색을 사용하면서 가장 두려운 부분이 ‘조화’잖아요.
강렬한 색을 선택할 땐 쉽게 질리지는 않을지 고민도 하고요.
그래서 좋아하는 색을 마음껏 사용하되 집 전체에 나름의 규칙을 세웠어요.
‘쨍’한 색채 주변에는 회색과 검은색을 배치해 들뜬 분위기를 살짝 눌러줄 것.
색은 강렬하되 디자인은 심플하고 모던할 것. 수전이나 스위치 등의 하드웨어에 다양한 색을 적용하는 건
오래전부터 시도해 보고 싶었는데, ‘내 집을 짓는다’는 생각이 이런 선택을 밀어준 것 같아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연상케 하는 ‘플레이 모빌 하우스’,
몇 번이고 돌려본 〈토이 스토리〉 한정판 피규어들, 모빌이라기보다 작품에 가까운
‘사라즈문(Sarah’s Moon)’의 새 모빌, 플레이 모빌의 폭스바겐 자동차 시리즈까지.
키치하고 사랑스러운 장난감과 피규어, 드로잉과 아트워크는 이 집의 또 다른 주인이다.
아이들과 부부의 공간 안팎에서 툭툭 얼굴을 내밀며 집에 생동감을 더한다.
“아이들이 가지고 놀게 두는데, 실은 제가 아끼는 물건들이에요. 아이들에게도
“이건 엄마 장난감이야. 잠시 빌려주는 거야. 그러니까 항상 소중하게 다뤄야 해”라고 말해요.
담백한 벽돌
물론 어쩔 수 없이 부속품을 잃은 물건도 있지만, 아이들도 엄마가 아끼는 거라는 인식을 하고 있죠.
부러지거나 잃어버리면 꼭 제게 와서 얘기하고 걱정해 줘요. 그럼 함께 찾아보거나 수리하죠.”
누군가가 지은 집에 라이프스타일을 맞추지 않고 자신과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도록 지은 이 집의 아이덴티티는 아이들 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집을 설계할 때 아이들이 원한 건 하나였어요.
자신의 방 혹은 ‘비밀 공간’을 갖는 것이었죠.” 세 아이의 방을 따로 만들어줄 순 없었기에
큰 방 하나를 3개의 구역으로 나눴다. 건축사사무소는 황지명이 아이를 키우며
필름으로 기록한 사진집 〈동그라미, 네모, 세모〉의 제목에서 힌트를 얻어 각각 분리돼 있으면서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세 자매의 침실 천장을 동그라미, 세모, 네모로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아이들의 방은 이 집의 얼굴이 됐다. 황지명이 이 집에 바라는 건 하나다.
“제게 집은 언제나 일과 휴식을 함께 하는 공간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거든요.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고, 그렇게 했어요. 이젠 이 집이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 없겠죠. 아이들이 자신의 바람을 녹여 만든 공간과 구조의 집에서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