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전반의 논리에 의한 미학 0과 無의 철학
우주 전반의 논리에 의한 미학 0과 無의 철학
100A 어소시에이츠. ‘100A’의 의미는 ‘百’이기도 하고 ‘白’이기도 하나, 이로부터 ‘0’과 ‘無’의 철학을 터득하여 ‘우주’ 전반의 논리에 의한 미학을 추구하고 있단다.
뭔 말인지 아리송했지만, 회사공식 페이스북에는 “1부터 시작해서 가까스로 98을 지나고 99를 거쳐 드디어 다 다르게 되는, 100A”란 문구가 있었다.
결국 ‘無’에서 ‘無限’을 구하려는 게 그들의 마음가짐이라 느껴졌다. 그런데 ‘다 다르다’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다다름’이 아닌 ‘다 다름’을 추구하는 그들의 도전정신이었다.
이는 안광일 소장이 올 초의 한 강의에서 말했던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제는 남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내가 가진 생각과 색이 무엇인지 표현하고 알려야 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100A’만의 자기철학에 대한 끝없는 희구였고, 그 메시지는 이 ‘쿼크’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났다.
“한국 커피의 시작은 우리 고유의 모든 가치를 상실해가던 아픈 시대에 들어온 서구문화였습니다.
140년 동안 깊이 자리매김한 커피를 더 이상 서구문화로만 여기지 말고 우리의 커피 미학을 사유해야 할 시기라 생각했습니다.
상반된 이 두 문화가 서로 훼손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접화(接和, grafting)’라는 미학 개념을 찾았습니다.”
한 치라도 드러내려는 게 상업공간의 속성이건만, 놀랍게도 ‘쿼크’는 다소곳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두 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서니, 여느 커피숍과 다른 묘한 신비감이 다가왔다.
“외부의 절제되고 질박한 비례의 입구는 시선의 방향을 따라 들어서며 몰입하게 했고,
이 졸박미(拙朴美)는 내부로 자연스레 이어주는 매개가 되게 했습니다.
1층에는 커피의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하는 클라이언트의 경영철학을 담은
에스프레소바와 로스팅실을 배치하여 커피에 대한 진정성이 발현되도록 했습니다.”
‘쿼크’의 나직한 색조는 그 누구도 반감이 생기지 않을 것
정사각형과 직사각형만의 면들은 평정심을 갖게 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이 평온에 ‘100A’의 맛과 멋을 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치 ‘고요함 속의 고요함은 진정한 고요함이 아니요,
움직임 속에 고요함이 있어야 천성의 진정한 경지에 이른다’는 ‘정중동(靜中動)’의 이치를 말해주는 듯한 심연의 처소가 펼쳐졌다.
“이 짙고 깊음을 지나 오르는 2층은 4개의 장면으로 연출되어, 열림과 닫힘,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의 조화를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관조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옻칠한지와 삼베 등 자연 소재를 입혀 그늘진 빛으로도 온기를 품을 수 있는 아취(雅趣)를 부여했습니다.” 공간 분위기만큼 정연한 답변이었다.
‘쿼크’에서의 ‘100A’의 ‘百’ 중 ‘1’은 선이고, 직교하는 많은 선으로 면을 만들며 형태를 이룬다.
언뜻 박물관이라 느껴질 만큼 단아한 선만을 묵묵히 담고 있다.
차 특유의 맛과 향은 장소의 분위기나 함께하는 상대에 따라 달라진다.
이에 쿼크의 공간은 차 고유의 향미만을 한껏 음미하도록 무색 무향 무미를 택했다.
하지만 디자이너로서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닌 결심이었을 게다.
“전통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낡고 오래된 흔적들에 대한 호기심과 내 안에 깊숙이 내재된 미적 심상에 무엇이 맺혀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이 공간에서 무엇을 향유할지는 모두의 자유이지만, 그저 편안함과 익숙함으로 착상되기를 바랍니다.
이 평안 속에서 아련한 흔적 같은 그 무언가를 찾아가시길 바랄 뿐입니다.”
나를 버려 우리를 택한 디자인이었다.
고객만을 위해 그 배경인 공간을 최소화하고 한 잔의 차를 향유하기 위해 시각적 치장을 경감한 겸양지덕의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한 흙이고 모든 생명을 숨 쉬게 하는 공기임을 입증한 ‘100A’의 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