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이고 고요한 집 ; 어릴 때 10년 가까이 주택에서 살았던 그녀는 언젠가 자신의 취향을 담은 집을 짓고 싶다고 생각했고, 이 집은 오랜 바람의 결과물이다
. 아이가 태어난 후 정원에서 흙을 밟고 바람을 맞던 시간을 아이의 유년 시절에도 선사하고 싶은 마음에 그녀의 행보는 한층 바빠졌다.
집터는 육아를 위해 친정과 가까운 인천 청라지구의 주택 부지로 결정했다.
“사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회사까지 출퇴근하려면 편도만 두 시간은 족히 걸려요.
하지만 공간을 통해 많은 영감과 에너지를 얻는 편이라 취향에 맞는 집에서 사는 시간을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마음에 드는 부지를 발견하고 계절마다 변하는 햇빛과 바람의 정도를 관찰하기 위해
수시로 드나든 지 1년이 지나서야 정식 계약을 했다. 그리고 우연히 바이아키 건축사무소의
이병엽 건축가를 만나면서 그녀의 상상은 현실이 됐다. 높이 6m에 달하는 창문을 통해
햇빛이 깊숙이 들어오는 거실, LP 음악을 들으며 다도를 즐길 수 있는 간살문 달린 방,
길다란 블랙 싱크대와 바닥과 같은 소재로 제작한 크림색 석재 식탁이 있는 부엌,
천창이 뚫려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워크 룸, 진한 월넛으로 마감한 곡선적인 대청마루가 한데 모인 집이 완성된 것이다.
우리 집에는 전형적인 사각형 방이 하나도 없어요. 세 개의 매스를 배치하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삼각형 · 오각형 방은 그 자체로 일상의 재미를 선사하죠.
정적이고 고요한 집
어둡게 코팅한 스테인리스스틸 루버 기둥을 촘촘히 배치한 외부와 현관의 파사드 또한
이 집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직선을 강조한 루버 기둥은 해의 움직임에 따라 정원과
집 내부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담벼락 앞에 홀로 선 청단풍과 큼직한
두어 개의 돌이 놓인 풍경은 수려한 동양화를 보는 기분마저 든다.
이 집을 둘러보면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은 물건들이 안팎으로 놓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손맛이 느껴지는 도자기,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책, 철거를 앞둔 할머니 댁에서 갖고 온
다기 세트와 다듬이 방망이 등은 새로 구입한 현대적인 아이템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가전이나 조명은 직선적이고 모던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반면, 도자기나 작은 소품은
오래되고 비정형적인 형태를 선호해요. 계속 봐도 질리지 않을 것, 자연적인 재료와 부드럽게 어우러질 것,
시간이 지난 후 딸에게도 물려줄 수 있을 것 등을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그런 물건에 마음이 가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