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버킨의 파리 하우스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 강의 왼편, 깊숙한 골목까지 걸어 들어가니 풀이 무성한 정원에 자리한 소담한 집 한 채가 나타났다.
밝은 햇빛으로 가득한 고즈넉한 분위기에 순간 이곳이 파리 한복판임을 잊고 말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벨을 눌렀다.
어떻게 떨리지 않을 수 있을까?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이자 전설의 패션 아이콘,
전 세계 여성들에게 지울 수 없는 영향력을 미친 제인 버킨의 집에 입성하는 순간이니 말이다.
[ 창조를 위한 놀이터 , 파리의 크리에이터 하우스… 녹색의 기운이 흐르는 곳 ]
어느덧 칠순을 넘긴 제인은 반려견인 프렌치 불독 ‘돌리’와 함께 이 집에 살고 있다.
현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벽을 가득 채운 가족사진 그리고 사진들이 붙어 있는 인상적인 패턴의 벽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 집에 이사온 지는 4년이 좀 넘었어요. 벽지는 브라퀴니(Braquenie′) 제품인데 프랑스에 사는 내내 같은 브랜드의 같은 원단을 쓰고 있어요.
벽지뿐 아니라 여기 있는 가구나 오브제며 분위기까지 전에 살던 집, 또 그 전에 살던 집과 거의 비슷해요.
이 집을 처음 꾸밀 때 딸들은 ‘또 똑같은 인테리어!’라면서 어처구니없어 했죠(웃음).
인테리어에 관심도 많고 다양한 디자인을 들여다보긴 하는데, 막상 제 집을 꾸밀 때는 늘 똑같은 스타일이에요.
언제나 편안하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제인다운 답이다.
유행이 어떻게 바뀌든 전 세계에서 통하는 일관된 스타일, 그런데 그 스타일이란 게 엄청나게 자연스럽다는 것.
아마도 흉내내기 어렵기 때문에 더 독보적이고 진실되게 느껴지는 것 아닐까.
실제로 그녀는 인터뷰 내내 오랜 친구 사이처럼 숨김없이 마음을 털어놓아 이렇게까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는 게 가능한지 놀랄 정도였다.
제인 버킨의 하루는 거의 매일 산책과 함께 시작된다.
돌리와 지내는 시간이 가장 많죠. 저와 돌리는 이 구역에서 유명한 한 쌍이에요.
아침 일찍 산책을 나가면 등교하는 동네 아이들과 종종 마주치는데, 얼굴은 좀 무섭게 생겼어도
애교 많은 돌리 덕분에 지나는 아이들이 돌리를 쓰다듬거나 인사하느라고 몇 걸음 못 가 멈추곤 해요.
산책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다이닝 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이 가장 길다.
현관 왼쪽에 자리한 부엌과 다이닝 룸에는 수많은 향신료 통이 줄 세워져 있고 오래 사용한 냄비들,
앤티크 패턴의 그릇들, 대부분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컵들이 가득하다.
“요리하는 걸 좋아해요. 주로 영국 요리들이 메뉴에 오르죠. 사과 소스를 곁들인 닭고기 오븐 구이,
감자 요리 같은 게 먼저 떠오르네요. 아무리 대단한 경험이 많다 해도 가족을 위해 뭔가 하는 게 가장 큰 기쁨을 줘요.”
제인 버킨의 파리 하우스
제인에게 가족이 어떤 의미인지는 이 한 마디에 잘 담겨 있다. 2013년 전 남편 존 베리 사이에서 낳은 딸이자
사진가였던 케이트 베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얼마나 힘든 경험이었는지, 먼저 묻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흐른다.
“당시 전 백혈병이 심해져 2년 정도 집에서 요양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는 고통스럽기만 했지만
인간의 몸과 마음은 떼내어 생각할 수 없다는 걸 이젠 알아요. 회복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비극이 지나간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녀가 유명인으로서 방문하게 되는 많은 장소 중에는 가족과의 추억이 어려 있는 곳들도 있다.
“지난 8월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공연을 했어요. ‘분카무라’라는 복합공간이었는데,
사실 그곳은 케이트가 개인전을 열었던 장소이기도 해요. 공연 당시 동행한 여동생을 위해 특별히
교토에도 갔는데, 거기서는 루(드와이옹)가 여섯 살 때 함께 갔던 전통식 료칸에 다시 묵었어요.
케이트가 교토를 찍었던 사진들을 다시 꺼내보기도 했고요.” 그녀는 세르주 갱스부르와 함께 샤를로트(갱스부르)를
임신한 채로 처음 갔던 일본의 모습이라든지, 도쿄에 갈 때마다 들른다는 오모테산도의 가게들에 대해 한참 동안 수다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