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라운지 디케이 / The Lounge DK
더라운지 디케이 / The Lounge DK
잡지 게재를 위해 보내온 이미지들만 보았을 때는, 언뜻 1,2백평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정작 45평밖에 안 되는 작은 공간에 각자의 역할을 가진 이러저러한 것들이 오밀조밀하게 담겨 있었다.
백과 흑, 무채색과 유채색, 무광과 유광, 매끈함과 거칠함, 단단함과 부드러움, 직선과 사선, 수평과 수직, 자연광과 인공조명, 물과 돌.
이 정도라면 현대 공간디자인에 대해 형언할 수 있는 단어들이 모두 모여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이 모두를 한 공간에 담았다면 亂場판 아니면 修羅場이 될 게 분명한데, 그게 아니었다.
최상층인 13층의 공간에 들어서자 디자이너가 찬찬히 설명해 주었지만, 일단은 두어 바퀴쯤 돌며 그저 느끼고 싶었다.
돌아보다 잠시 멈춰 살짝 만져보기도 하며 직접 접하고 나니, 잠시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며 생각을 가다듬고 싶을 지경이었다.
순간 떠오른 것은, ‘대체 누가 이런 공간을 만들 기회를 주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창의적 가치를 공감하며 디자이너에게 한껏 발휘할 기회를 주는 자체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공간을 가로지른 검은색 긴 테이블 위에는 ‘정산소종(正山小種)’이란 홍차와 산딸기 연과(軟菓)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취재하러 온다는 얘기를 들은 클라이언트인 김동국 대표 부부는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자리를 함께해주었다.
“이런저런 사업을 하다 보니 내 갈급함을 채울 것은 결국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와서 편히 만나고 뭐든 나눌 수 있는 빈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미 몇 번의 문화행사를 하며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라 했다.
박재우 디자이너와 일 년여 동안 만나며 한 땀 한 땀 구상을 했다고 한다
둘이서 함께 고심하며 방점을 찍은 공감대는 여기저기 걸려있는 중견화가 추숙화 선생의 그림에서 엿보였다.
또 절제 속에서 보이는 응축된 힘은 이 자그마한 공간을 강하게 이끌고 있었다. 어느 한구석도 디자이너가 무심코 지나간 곳이 없는 완결의 미를 갖고 있었다.
장방형의 공간이기에 첫 번째 숙제는 길게 펼쳐놓느냐 짧게 나누느냐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3층에서 양면의 창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궁산(弓山)의 풍경은 도저히 가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디자이너는 긴 축을 일필휘지로 내그으며 공간을 그려나갔다. 그 중심축을 바탕으로 높낮이를 달리하는 5개의 레벨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평의 레이어들은 가운데를 가로지른 긴 테이블의 곁에서 나지막한 언덕과 야산처럼 늘어서 있었다.
걷다 보면 더라운지 물도 나오고 돌도 나와, 마치 작은 마을 전경이 펼쳐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 자연스런 융합은 철저히 계산되어 있었다.
‘설계(設計)’라는 단어가 ‘베풀 設’에 ‘셈할 計’라는 걸 입증하듯이, 그 등고선은 유려하게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선을 찾을 수 있었던 디자이너의 내공은, 수학에 있었다.
전기공학도였던 디자이너 박재우는 젊은 시절 수학에 빠져 살았단다.
그리고 그 사실은 그가 새롭게 시작한 사업의 브랜드인 ‘토포로지(位相數學, Topology)’에서도 입증된다.
토포로지, 즉 수학 도형의 위상적 성질을 연구하는 기하학을 제품명으로 내걸고 있었다.
‘길이나 크기라는 양적 관계를 무시하고 도형 상호의 위치나 연결 방식 따위를 연속적으로 변형하여,
그 도형의 불변적 성질을 알아내거나 그런 변형 아래에서 얼마만큼 다른 도형이 있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을 탐구한 그이기에, 이 공간의 위계는 한 치의 오차도 없기를 바란 것 같았다.
굳이 아쉬운 게 있다면 가득 찬 공간으로 인해 인간의 여백이 부족하다는 점 하나였다.
하지만 무한히 이어지는 수(數) 안에는 원래 한 치의 틈도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The Lounge DK’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