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롯트 오피스 / 百乐事务所 / PILOT O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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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라운지 디케이 / The Lounge DK

디지털화는 도구의 변화를 가져온다. 다양하고 간편한 쓰기 도구들이 생겨나고, 펜으로 종이에 글자를 쓰는 행위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날로그의 종말을 시사하진 않는다.

여전히 우리는 진심을 전하는 방법으로 편지를 쓰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을 기억하고자 일기를 쓴다.

효율을 추구하는 시대일수록 시간과 정성을 들인 것들의 의미는 더욱 깊어지기 마련이니까.

펜의 쓸모는 ‘진심’에 있다고 전하는 필기구 브랜드, 한국파이롯트가 첫 번째 팝업스토어를 선보였다.

한국파이롯트는 1962년 일본의 파이롯트와 기술제휴를 맺고 섬세하고 다양한 필기구를 전개해왔다.

마음스튜디오는 파이롯트 펜의 우수한 기술성을 감성적으로 경험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기획부터 설계, 제작 등 전 과정을 아우르며 공간을 완성했다.

종이와 펜이 있다면 어디에서나 ‘쓰기’를 할 수 있지만, 펜이 모여 있기에 적정한 공간성은 있다.

디자인팀은 3단계의 청사진을 클라이언트에게 제시했다. 사무소, 학교 그리고 바.

특히 바 공간은 유려한 곡선 디자인의 유리병에 담긴 파이롯트 잉크 ‘이로시주쿠(色彩雫, 색채물방울)’의 물성에서 착안한 것이다.

각기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게 다양한 공간성으로 쓰는 즐거움을 선사하길 바랐다.

첫 번째 팝업스토어는 ‘소중한 말들 모음 사무소’라는 콘셉트에서 시작했다.

사소한 일상이지만 누군가에게 소중할 순간을 담은 말이 모여 있는 사무소

한쪽 벽면에 빼곡한 문서보관함에는 100개의 주제로 소중한 말들 아카이빙 폴더를 만들었다.

펜이 있는 장소의 뻔한 전개로 보일 수 있지만, 디자인팀은 이 일상적인 공간에 변주를 꾀했다.

성수동 거리에 자리한 매장은 전면부가 개방되어 한눈에 전체가 담기는 구조다.

이걸 활용해 영화 속 한 장면(Scene)을 연출해보면 어떨까?

서류가 날아다니고, 복사기가 돌고, 프린트를 기다리며 전화를 받고, 누군가는 정수기 앞에서 태연하게 커피를 마시기도 하는 사무소의 일상 장면을 상상했다.

정교하게 짜인 공간 레이아웃, 가구와 사물의 미학적 비례감, 경쾌한 민트블루와 코발트블루로 풀어낸 공간은 평범한 사무소와 달리 아름다운 미장센이 돋보인다.

시대를 특정하기 어려운 모호함도 자아낸다. 오래전 과거일 수도 다가올 미래일 수도 있다.

이 불명확한 시대성은 새로움이 탄생하는 성수동의 지역성과 엮여 기존 브랜드 위에 쌓인 오래된 먼지를 털어낸다.

끝이 정해진 팝업스토어는 대개 마감이 거칠고 투박하다는 특징을 가진다. 전략과 예산을 고려한 방식.

그러나 디자인팀은 그 공식을 따르지 않았다. 짧은 기간이지만 정말 존재하는 한 장면처럼 보여주기 위해 가구를 마감하듯이 다듬어 갔다.

공간에 놓이는 조명 하나도 기성품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제작했다. 그렇게 만든 것들이 또 다른 그릇에 담겨 계속 쓰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파이롯트 오피스는 ‘기록’과도 같은 공간이다. 팝업스토어는 순간을 기록하고,

머문 이들의 기억으로만 남겨진다. 마음스튜디오는 어차피 사라질 순간이지만,

그럼에도 ‘기억’하고 싶은 한 장면으로 이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그들은 매장 밖을 나선 일상에서도 쓰는 즐거움을 느끼고,

소중한 말들을 모으며 기록의 가치를 이어가길 바란다.

지면(地面) 위에서 사라진 공간일지라도 다시 흰 지면(紙面) 위에 쓰여 의미를 남기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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