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수고방에서는 제철 생물의 삶을 존중
두수고방에서는 제철 생물의 삶을 존중
1년을 4개로 소분하면 계절이고 12개로 등분하면 월(月)이다.
선조들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일 년을 24마디로 나누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곡식을 거두기 위한 주기였다. 이것을 절기라고 불렀다. 농경사회에서 멀어진 요즈음의 우리에게 절기란 날씨를 가늠하기 힘든, 퇴색된 지표이곤 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밥상에는 24절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에는 햇나물을 섭취하고, 낮의 길이가 1년 중 가장 긴 하지(夏至)에는 감자를 수확해서 먹는다.
추분(秋分)에는 버섯이, 동지(冬至)에는 동지팥죽이 밥상 위에 올라온다.
두수고방에서는 제철 생물의 삶을 존중하고 그 본연의 성질을 해치지 않는 요리를 선보인다
LIMTAEHEE DESIGN STUDIO는 뿌리를 내린 씨앗이 식물로 자라고 열매를 맺으며 우리 몸에 이로운 음식이 되는 순환과 섭생의 이치를 이해하며 이곳을 조화롭게 완성하였다.
두수고방은 절에서 스님이 탁발하고 남은 음식을 보관하여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곳을 뜻한다.
이곳은 사찰음식의 대가 정관스님의 정신이 깃든 공간으로, 도심과 가까운 곳에 거점을 두고 좀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자 기획되었다.
앨리웨이 광교에 자리하게 된 이유 또한 동네 골목 문화를 재현해 놓은 터로서 음식 공동체를 형성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디자이너
디자이너는 이곳을 수려한 공간으로 연출하기보다는 일상적이되 범상치 않은 기운을 주는 공간으로 짓고자 했다.
신선하고 건강하면서 화려한 상상력을 품은 정관스님의 음식을 닮고자 했다.
공간은 크게 중앙 홀과 쿠킹 스튜디오, VIP 스튜디오, 그리고 옥상텃밭으로 구성된다.
내부의 툇마루는 공양을 하고 차를 마시는 곳이다. 벽 한편에 무심하게 걸려 있는 소반을 내려 간결하게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
홀의 테이블들은 상처와 결함이 있는 가구들이 재편집된 것으로, 지나치게 기능적인 목소리를 내세우지 않도록 의도된 디자인이다.
테이블 옆으로는 합판에 펠트를 덧댄 폭이 넓은 의자가 놓여 있는데, 벤치에 앉으면 마음이 넉넉지 않고 방석은 사족 같기에 나름의 정중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VIP 스튜디오는 정관스님의 시연을 보고 밥을 먹은 뒤 차를 마시는 곳으로, 스님이 기거하는 백양사 천진암의 작은방을 옮겨 놓은 공간이다.
테이블의 슬랩우드를 따라 물이 흐르고 낙하하는 풍경은 수행자의 정갈한 삶을 간접적으로 전해준다.
임태희 디자이너는 이곳이 ‘그냥저냥 머물기에 좋은 곳’이기를 바랐다고 표현한다.
영민하고 멋스러운 디자인이 아닌, 외려 뭉툭하여 우둔해 보이는 애매모호한 디자인으로 공간에 서서히 스며들고자 함은 최근 그가 꾸준하게 제시하는 화두이다.
아름다움의 정점을 치열하게 쫓기보다는 검박한 미감을 통해 일상과 비일상, 옛것과 새것의 어우러짐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두수고방의 옥상텃밭은 종교를 넘어서 음식을 매개로 이웃들이 교류할 수 있는 마당이다.
장 담그기, 김장 등을 함께 한 뒤 장독대에 보관할 수 있는 일종의 공유 텃밭인 셈이다.
수행자의 어려운 메시지가 아닌, 일상의 먹는 행위를 통해서 깨달음을 주는 두수고방의 얼이 이곳에 있다.
찰나 동안 머물고 사라지는 제철 생물들, 음식과 마음을 나누며 만들어나가는 식문화 공동체를 통해 우리는 시절인연의 의미를 넌지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