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하우스 성수 성수동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각파이프(steel tube)

트리하우스 성수 성수동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각파이프(steel tube)

트리하우스 성수 성수동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각파이프(steel tube)

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하만리에 위치한 청보리밭 창고

텔레비전이 ‘바보상자’로 불리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이 소비하는 주 콘텐츠가 글에서 영상으로 변모하면서, 시각화된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텔레비전이 보는 이를 바보로 만든다는 식의 비판적인 말이었다.

지금도 영상은 지배적인 콘텐츠 형식이지만, 텔레비전이 주를 이루던 시절보다 그 길이가 확연히 짧아졌다.

끊임없이 생산되는 1분 남짓의 영상은 손가락 까딱 만으로 무한정 주입되고, 그 사이사이에 생각의 틈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불어 AI가 발전하면서 효율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게 됐다.

이제 원하는 정보가 있을 때 인공지능 서비스에 ‘찾아줘’ 한 마디만 적으면, 사람이 수 시간은 걸려 수집할 자료를 뚝딱 가져다준다.

너무나도 편리하지만 이에는 결과만 존재하고 과정이 없다. 과정은 논리적 사고다. 인간에게 ‘사고’가 사라진 것이다.

우리는 가장 고등한 사고를 통해 집약된 기술로 만들어낸 결과물이 인간의 사고를 사멸시키는 아이러니에 봉착했다.

설계팀은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건물 내부 마감’이라는 표현 대신 ‘실내 건축’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단순히 마감재를 선정하고

가구를 배치해 넣는 수준을 넘어 미학적 기능과 경험을 유도하고자 했다.

효율적으로 공간을 배치하고 많은 사람을 수용하고 수납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실내

디자인과는 다른 결의 지향점이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실용성의 기준을 제시한 셈이다.

이 프로젝트는 정글이나 숲속의 나무에 집을 짓는 실제 트리하우스와는 달리, 정글처럼 밀도 있게

전개된 기존의 도시와 건물 속에 하나의 나무를 삽입해 자라나게 한다는 은유적 설정을 부가한다.

식물의 줄기가 뿌리나 잎, 꽃 등으로 변화하며 하나의 나무를 구성하는 기본 모듈이 되듯,

성수동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각파이프(steel tube)’를 기본 모듈로 설정했다.

이는 합판, 스틸, 스테인리스스틸, 알루미늄 등 다양한 재료로 변이 및 상호 조합되고,

형태적인 경계와 용도 또한 모호하게 전환되면서 가까이선 다른 듯하지만 크게 보면 하나의 나무로 표현된다.

7층의 마이크로 갤러리는 소형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작은 공간으로 구성됐다.

8자형 동선을 통해 중심부 조형물을 마치 기둥 주변을 배회하듯 경험하며 공간과 전시를 파악해 가도록 계획했다.

대화와 식음이 이뤄지는 8층 다목적 라운지는, 주방과 선반, 벽체와 천장, 조명 조형물이 하나의 언어로 옥탑과 연결된다.

옥상 공간은 금속 데크와 아트월로 구성되는데, 나무 그늘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표현하듯 반사도가 다른 금속들이 도시를 등지고 내부 공간을 감싼다.

결과적으로 각 층 공간은 다양한 형상과 다른 재료로 구성되지만, 의미로 연결되며 하나의 나무로서 존재하게 된다.

로마 황제이자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삶의 행복은 생각의 질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배를 곯을지언정 배부른 돼지보다 소크라테스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성수동에 뿌리내린 한 그루의 나무가, 시대가 앗아간 사유를 되찾기 위한 위대한 한 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회사 소개나 설계 회의를 하다 보면

종종 클라이언트 측 매니저로부터 그동안 보던 것들에 비해 너무 화려하고 현대적이라는 식의 의견을 듣는다.

그래서 좀 더 정돈된 모습의 사례를 소개하면 너무 밋밋한 거 아니냐는 답변이 돌아온다.

일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 중 다수는 자신만의 취향이나 철학 같은 것이 없다.

그러다 보니 최근 트렌드를 보고 그냥 따라가자거나 참고 사례나 벤치마킹한 것을 그대로 복제해 짓자는 경우도 있다.

반면, 빠르게 바뀌는 트렌드에 지쳐 지속가능성까지 언급해가며 ‘트렌드를 따르지 않는 디자인’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제적 의미는 주로 기존 건물을 그냥 쓰자는 또 다른 트렌드이거나, 깔끔한 박스 외에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한정적인 미니멀 디자인에 불과하다.

트리하우스 성수 이 모든 솔루션이 단편적

좋은 대안일 수도 있다. 문제는 모든 프로젝트의 해법이 거의 완전히 동일하다는 점이다.

이렇듯 동일인의 작품처럼 보이는 유사한 공간들이 대량생산 되고 있는 현대건축의 현장에서

‘차별화’와 ‘보편화’ 사이를 오가며 고민하던 중, 작은 오락실에 들어갈 우리만의 이야기부터 만들어 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려서는 홍어나 청국장, 커피나 위스키 맛을 잘 모르듯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라는 개념의 다양성을 공유하는 것이 이상적 가치이자 오락실의 접근방식이다.

주변을 통해 이미 충분히 공급되고 있는 효율, 절제, 여백, 차분함 같은 것들에 의한 생산성을

기대하기보다는, 공간을 매개체로 새로운 영감과 의미를 부여하고 사용자와 그들의 창의적인 미래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자 하는 데 더 주목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에서 기대하는 수준의 소극적 목표가 아닌 도시환경 속 새로운 경험과 영감,

스스로 오락과 재미를 제공하는 ‘건축’으로서, 생각과 삶의 변화까지도 기대하게 되는 곳.

그것이 잠정적 인플루언서들을 위해 우리가 꿈꾸고 있는 ‘오락실 설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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