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트 식스 아파트 FONT 6 Apartment
폰트 식스 아파트 FONT 6 Apartment
바르셀로나라는 이름을 들으면 축구팬들은 아마도 가장 먼저 리오넬 메시(Lionel Messi)를 떠올릴지 모른다.
이전 세대라면 요한 크루이프(Johan Cruyff)의 턴이 생각날 수도 있고.
이 와중에도 누군가는 카탈루냐 아르누보를 대표한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를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굳이 사람만을 떠올리란 법은 없지만.
열차는 종점역에 도착하고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듯 건축가는 건축물을 남겼다.
곡선을 이용해 도시에 생동감을 불어넣은 가우디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맡았던 사그라다파밀리아(Sagrada Familia) 성당은 지금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사실 오늘의 주인공은 성당이 아니다.
그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폰트식스아파트(FONT 6 Apartment)다.
앞서 말한 가우디의 유산과 폰트식스아파트는 에이샴플레(Exiample)라는 신도시에 있다.
CaSA의 창업자 중 한 사람이자 아파트 주인인 안드레아 세르볼리(Andrea Serboli)는 도시 지명에 걸맞게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Expansion) 시켰다.
주거 공간에 분더카머(Wunder Kammer)를 만드는 방식으로 말이다.
영어로는 Cabinet of Curiosities, 우리말로 ‘호기심의 방 또는 서랍장’으로 풀이되는
분더카머는 기원전 3세기 박물관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무세이온(Mouseion)에서 비롯됐다.
한때 고대 이집트 유물부터 천문대 심지어 식물원도 있던 공간은 집권자의 얼굴이 바뀐 것처럼 물건들의 종류도 조금씩 변했다.
무언가를 전시한다는 공간의 목적만큼은 변하지 않았지만.
안드레아 세르볼리는 분더카머의 의미를 욕실에 풀어냈다.
욕실은 잠시나마 자연스러운 상태로 되돌아가는 의식을 치르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하루의 묵은 피로를 씻어 내며 머릿속을 정리하기도 한다.
글로 적을 수 없는 무언가를 할 수도 있고.
몸을 씻는 행위야말로 내밀하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당사자만 알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호기심의 수납장’이라는 분더카머와 욕실은 이음동의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건축가는 레이아웃 중앙에 위치한 비밀의 욕실을 데이비드 호크니의 회화에서나 볼 법한 푸른색으로 마감했다.
문인지 수납장인지 좀체 구분이 안 되는 곳을 서랍 열 듯 열면 외부와는 다른 온도를 보이는 살구색 공간이 모습을 보인다.
수납장 역시 산호색을 머금고 있어 은밀한 느낌을 준다.
마치 파란 외투에 가려진 사람의 살결 같다고나 할까.
이곳에 욕실만 있는 건 아니다. 욕실을 나와 오른쪽엔 침실이, 왼쪽에는 거실이 있다.
색은 동일하지만 욕실 파사드의 서사는 옷장과 수납장 그리고 아일랜드 식탁의 형태로 이어진다.
재밌는 건 식탁 앞 싱크대 위에 자리한 원형 창이다.
검은색 무광 프레임으로 둘러싸인 창은 욕실 속 은밀한 실루엣을 거실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든다.
공간을 만드는 데 있어 우선순위라는 건 절대적인 게 아니다.
안드레아 세르볼리는 75㎡라는 주어진 조건에서 침실도 거실도 아닌 욕실에 중요성을 부여했다.
바르셀로나라는 이름에서 모든 사람이 티키타카(tiki-taka)를 떠올리지 않는 것처럼.
세상에는 곡선이 만드는 아름다움도 있다는 걸 보여준 가우디처럼.